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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개발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다음에 언급하는 내용은 내 상상의 결과물로서, 어떠한 객관적 근거도 확보하지 못했음을 밝혀 둔다. 그동안 한국 사회의 움직임과 게임업계의 동향을 바라보면서 ‘이런 시나리오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한편으로는 이러한 생각을 과연 나만 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해서 한번 적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물결이 한국을 거세게 휩쓸고 있는 가운데, 비정규직 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이미 우리나라 노동자의 반수 이상이 비정규직이다. 거기에 비정규직 보호법이라는,  이름도 희한한 악법이 시행되면서 우리 나라 전 산업 분야에서 노동자의 비정규직화는 더욱 가속화하고 있다. 그렇다면 게임업계는 어떨까? 게임 개발자들은 이러한 비정규직화와 관계가 없을까? 관계가 없을 리 없다. 내가 예측하건대, 게임 개발자들도 조만간 비정규직화하게 될 것이다.

 

많은 게임 개발자들이 잘못 생각하는 것이 있다. 게임 개발자들은 이른바 (피터 드러커가 말한) 지식 노동자이며 일반 노동자와는 뭔가 다른 존재라는 것이다. 즉, 같은 노동이라고 하더라도 게임 개발자들의 노동은 고급 지식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산업 분야의 노동자와 달리 쉽사리 인력을 교체하는 것이 어렵고, 따라서 안목이 있는 개발사라면 가급적 우수 개발자들을 회사 안에 묶어 두려고 할 것이라는 게 그들의 생각이다.

 

근거 있는 생각이다. 하지만 소수의 고급 인력은 어느 산업에 종사하고 있건 상관 없이 정규직을 보장 받는 법이다.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이들 소수 개발자를 제외한 보통의 대다수 개발자들이 앞으로도 과거처럼 정규직으로서 일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2000년대가 되기 전까지, 한국의 게임 시장은 그 규모가 형편 없었고 따라서 게임 개발자들의 임금 수준도 무척 낮았다. 나의 경우를 돌이켜보면, 1996년 미리내소프트에 입사하여 첫 월급으로 받은 돈이 45만원이었다. (수습기간이어서 더 적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개발 경력이 3년 정도 되었을 때의 연봉이 1300만원이었다. (그때 우리 회사에는 개발 경력이  10년 가까이 되는 개발자들이 여럿 있었지만 이들의 연봉도 2000만원을 넘지 못했다) 비록 정규직으로 일하고 있었지만 사실 이 시기에는 정규직이라는 것이 별 의미를 가지지 못했다. 툭하면 이번 달 월급 나올까를 걱정하는 처지인 데다가, 회사가 갑자기 망할 때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2000년을 전후해서 갑자기 개발자의 대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스타크래프트의 대히트, PC방의 급속한 증가. 온라인 게임인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의 급작스러운 매출 신장, 전국적인 초고속 통신망 보급, 거기에 전세계적인 IT 붐이 일면서 한국 게임 시장의 규모가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고, 이에 따라 게임 개발사들이 갑자기 늘어났기 때문이었다. 특히 과거와 달리 게임 회사에 투자되는 자본의 규모가 커지면서, 이런 신흥 게임 개발사들이 우수한 게임 개발자를 확보하기 위해 ‘연봉’ 경쟁을 시작했다. 이런 상황 하에서 게임 개발자들의 연봉이 갑자기 큰 폭으로 오르게 되었다. (나의 경우도 일년 사이에 연봉이 몇 배나 뛰는 것을 경험했다. 게임 회사들이 많아지면서 우수 개발자들에 대한 수요는 많아졌으나 당시까지 척박한 한국 게임계에 그러한 인력은 많지 않았다. 수요는 많은데 공급이 적으니 몸값이 오르는 것은 당연했다.)

 

이후 몇 년 간 한국 온라인 게임의 전성기가 오면서 몇 차례의 대박 신화가 터졌고, 이에 따라 게임 회사는 계속 생겨났다. 물론 망해서 사라진 회사도 부지기수였지만, 어떤 회사가 망하더라도 새로운 회사가 끊임 없이 생겨났기에 전체적으로 게임 개발자들의 입지가 좁아지지는 않았다. 또한 이 당시만 해도 게임 회사나 퍼블리셔들이 치열한 자유 경쟁을 하던 상황이라 개발자들은 그 사이에서 반사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그 중에는 게임 회사를 반년~1년 정도의 주기로 옮겨 다니며 자신의 몸값을 올리던 개발자들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그 좋던 시절이 이제는 다 지나가 버렸다는 것을 우리 개발자들은 이제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일하고 있는 게임 시장이 과거와는 사뭇 다른 형태로 변했기 때문이다. 내가 많은 게임 개발자들이 조만간 비정규직의 처지가 될 것이라 예감하게 된 것도 바로 이러한 변화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변했다는 것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가장 주목하는 것은 단 한가지 사실이다. 바로 게임 업계가 이제 ‘과점’ 형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2000년 이후 한국 온라인 게임 시장의 성장이 두드러졌던 시절, 게임 업계에는 두 종류의 회사가 있었다. 게임 개발로 돈을 번 회사와 퍼블리싱으로 돈을 번 회사가 그것이었다. NC소프트나 넥슨, 웹젠 같은 회사가 전자의 대표격일 것이며, 후자로는 한게임이나 넷마블, 한빛 소프트 같은 회사를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때는 A사는 개발사, B사는 퍼블리셔 라는 식으로 분류하는 것이 매우 쉬웠다.) 이들은 한두 개의 히트작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직까지 게임 시장에서 압도적인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는 않았다. 이들처럼 유명하지는 않아도 꽤 큰 규모의 자본을 앞세워 이들과 경쟁하던 신흥 개발사나 퍼블리셔들 또한 많았으며, 이들은 말 그대로 치열한 자유 경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런 경쟁의 과정에서 어느 정도 숙련된 게임 개발자들은 얼마든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한편 신규 게임 인력이 급속도로 업계에 진출한 것도 이 시기였다. 워낙 개발자 수요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경쟁 과정에서 스스로의 몸집을 불려 나갔다. 개발사로 시작했던 NC소프트나 넥슨, 웹젠 같은 회사들은 자체적으로 게임을 개발하는 한편, 퍼블리싱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마찬가지로 한빛 소프트나 넷마블, 한게임(NHN)과 같은 퍼블리셔들도 자체 개발팀을 꾸리기 시작했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은 몸집을 불려야 했고, 강해져야 했던 것이다. 그리고 치열한 경쟁 끝에 이제 시장에는 대여섯개의 메이저 퍼블리셔가 남았다. 그리고 그들과 비교할 때 나머지 회사들은 자잘한 퍼블리셔 또는 개발사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또한 이 시기는 게임 개발자들에 대한 수요가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증가한 시절이기도 했다. 엄청난 자본을 가진 메이저급 업체들이 번갈아가며 게임 개발자들을 대규모로 뽑았기 때문이다.(어떤 회사는 한 해에 거의 300명 가까운 개발자를 뽑았다고 한다. 내가 그 회사의 인사 담당자로부터 직접 들은 이야기이다.) 그때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메이저급 회사들은 보통 대여섯 개의 신작 라인업을 갖추고 있었고 대규모 캐쥬얼 게임 포털 사업을 준비하는 업체도 있었다. 이들은 개발자들을 닥치는대로 뽑았고, 개발자들은 A사에서 B사로, 그리고 B사에서 C사로 옮겨다니며 ‘안정된 직장생활’을 했다. 개발자들에게는 참으로 좋은 시절이었다.

 

그런데 이제 세상이 변했다. 자본주의에서 기업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과점’ 구도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금은 몇 개의 메이저급 퍼블리셔(자체 개발팀을 보유한 퍼블리셔)가 한국 온라인 게임 퍼블리싱 시장을 거의 지배하고 있다. 그들은 우수한 개발 인력은 물론이고 우수한 퍼블리싱 인력(마케터와 풍부한 경험을 가진 운영 인력 등)과 서비스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아직까지 중소 퍼블리셔들이 조금 남아 있기는 하지만 이들은 자본이나 퍼블리싱 능력 면에서 메이저 업체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사실 요즘은 이들 중소 퍼블리셔들이 우수한 게임을 ‘잡기’도 어렵다. 내가 아는 중소 퍼블리셔의 영업 담당자를 보아도 알 수 있는데, 좋은 게임 하나 잡아 보려고 사방 돌아다니고 있지만 좋은 게임을 찾아볼 수 없다고 툭하면 나에게 하소연한다. 잘 만든 게임은 이미 메이저 퍼블리셔가 다 가져간 상황인데다가, 아직 판권 계약을 하지 않은 개발사들도 가급적이면 퍼블리싱 능력이 뛰어난 메이저 업체를 우선적으로 알아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이제 한국의 게임 시장은 여섯 마리 정도의 공룡 퍼블리셔와, 그들이 먹다 남긴 먹이를 찾아 다니는 조그만 포유류 퍼블리셔, 그리고 수많은 군소 개발사들로 구성된 곳이 되었다. 그리고 머지 않아 우리 개발자들에게 안 좋은 소식이 들려 오기 시작할 것이다. (이제부터는 나의 근거 없는 시나리오다. 감안해서 읽기 바람)

 

이제부터 메이저 퍼블리셔들은 자신들이 그동안 흡수했던 수 많은 개발자들을 토해내기 시작할 것이다. 이미 그들은, 자체 개발은 그것이 성공했을 때는 좋지만 실패했을 때 부담이 무척 크다는 것을 경험했으며, 많은 인력을 정규직으로 데리고 있을 때 드는 비용(인건비, 복지비, 건물 임대료, 4대 보험료 등등)이나, 고려해야 할 여러 가지 법률적 제약(근로기준법 등등)의 짐을 지지 않고도 얼마든지 이윤 획득을 위한 사업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연봉 재계약 거부 등의 방법으로 굳이 내부에 데리고 있을 필요가 없는 개발자들을 정리할 것이며, 국내 메이저 업체 대부분이 그 길을 택할 것이다.

 

몇 년 전만 해도 한 업체가 개발자들을 토해 내면, 다른 업체에서 그들을 대규모로 채용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상황이 아니다. 한번 게임 업계를 둘러 보기 바란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리니지’나 ‘뮤’, ‘라그나로크’ 등에 비견될 대형 히트작을 만들어 낸 신생 업체가 있는가를 말이다. 이제 시장에는 그러한 거대 신흥 퍼블리셔가 없기 때문에, 메이저 업체가 토해 놓은 개발사들을 흡수할 회사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면 이렇게 인력 시장으로 내몰린 개발자들은 이제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첫번 째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른 회사에 취업하는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이제는 이 많은 인력을 고용할만한 회사가 없다. 물론 경력이 오래된 개발자들이야 중소 개발사를 어떤 식으로든 비집고 들어가겠지만, 대다수는 그렇게 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길은? 뻔하다. 창업 밖에 없는 것이다.

 

창업을 하려면 자금이 있어야 한다. 주식회사를 설립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본금은 어떤 식으로든 마련할 수 있을 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으로 회사를 운영할 수는 없으므로 창업의 길을 선택한 개발자들은 가급적 빠른 시간 내에 게임 데모를 만들어 투자자를 찾아 다녀야 한다.

 

그런데 최근에 투자든 게임 판권 계약이든 하러 다녀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요즘은 ‘게임 데모’ 만을 가지고 투자 받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과거에는 인력 구성만 보고, 또는 기획서만 가지고 투자를 유치한 경우가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다. 요즘의 투자자는 조금 덜 벌더라도 안전하게 투자하고 싶어한다. 따라서 가급적 게임들을 많이 보고, 서로를 비교하고, 경쟁시켜 가며, 가장 위험이 적으면서도 좋은 조건으로 투자하려고 한다. 따라서 창업의 길을 택한 개발자들은 이내 ‘좋은 조건으로 투자 받는 것’은 꿈속에서나 가능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중요한 것은 어떤 조건으로든 ‘투자를 받는 것’이지 조건을 따질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절감하게 되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메이저 업체의 ‘과점’ 구조가 빛을 발하게 된다. 가만히 앉아 있어도 우수한  데모 게임을 손에 든 개발자들이 투자 받겠다고 줄줄이 찾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창업의 길을 택한 개발자들이 데모를 만들었다고 해도 이제 한국 게임업계에서 갈 곳은 몇 군데 없다. 엔젤이나 기관투자자? 그런 투자가들이 옛날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하지만 그들은 멸종한 지 오래다. 중소 퍼블리셔? 같은 값이면 메이저 퍼블리셔와 판권 계약을 하는 것이 게임의 성공 확률을 높일 것이므로, 중소 퍼블리셔를 찾아간다 해도 그들은 일단 2순위이다. 그들은 메이저 퍼블리셔들로부터 거절을 당한 후에야 찾아가게 되는 대상들이다.

 

이제 점점 메이저 퍼블리셔의 세상이 된다. 메이저 퍼블리셔들은 한 때 자신들이 정직원으로 데리고 있었던 개발자들을 많이 내 보냈지만 그들은 창업을 한 뒤, 데모를 들고 다시 자신들을 찾아온다. 물론 경쟁 관계에 있는 다른 메이저 퍼블리셔에게 좋은 작품을 빼앗길 우려도 있지만 메이저 업체라 해도 한 해에 퍼블리싱할 수 있는 게임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모든 작품을 빼앗길 염려는 없다. 이제 과거와 달리 공급이 수요를 엄청나게 초과하는 구도가 되었기 때문에 게임의 가격은 점점 내려간다. (만약 마음을 나쁘게 먹는다면 과점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메이저 업체들끼리 담합을 할 수도 있다. 실제로 그러지는 않겠지만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제 그들은 값싼 제품을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메이저 퍼블리셔가 모든 개발자들을 내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핵심 인력들은 계속 정규직으로 남겨 둔 채 자체 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과거와 달리 소수의 정규직과 다수의 비정규직 개발자가 투입되어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재취업을 하거나 창업을 하지 못한 개발자들의 많은 수가 어쩔 수 없이 비정규직을 선택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비정규직 개발자와 메이저 업체를 연결시켜 주는 일종의 용역회사도 등장할 것이다. 이러한 가정이 가능한 것이, 현재도 많은 회사들이 외주를 전문으로 하는 개발자들의 팀과 계약을 맺고 일하고 있으며, 그래픽 외주의 경우 외주 전문회사가 등장한 지도 꽤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앞에서 설명한 업계 구도의 변화로 인해 이러한 외주 전문 회사가 과거보다 훨씬 많이 생겨날 것이며, 그들끼리 치열하게 경쟁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 앞으로 달라질 일이다.

 

한편, 국내 게임 개발자들이 정말 잘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국내 메이저 퍼블리셔들이 단지 ‘한국 기업’이라는 이유로 앞으로도 계속 한국 게임 개발자나 개발사들을 쓰지는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자본에는 국경이 없다고 누가 말했지만, 실제 한국 게임 회사들도 이러한 자본의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 특히 온라인 게임을 주 업종으로 해 온 한국 회사들의 경우, 과거에는 내수 시장의 비중이 무척 컸지만 지금은 국내 시장에서의 수입보다 해외 시장에서의 수입을 더욱 중시하는 상태로 바뀌었다. 또한 전 세계적으로 PC 게임 시장의 규모는 점점 작아지고 있고, 앞으로 살아 남기 위해서는 결국 콘솔 게임 시장으로 뛰어 들어야 하는데 국내 개발자들 중에 XBOX360이나 Wii, PS3 게임을 경쟁력 있게 만들만한 사람들을 찾기는 쉽지 않다.(만들어 본 경험도 별로 없지 않은가) 그리고 어차피 해외 시장을 노리는 상황에서 굳이 경쟁력이 입증되지 않은 국내 게임 개발자나 개발사를 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차라리 해외의 소규모 개발사 중에서 실력 있는 곳을 찾아서 그들을 인수하거나 투자하는 것이 더 낫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어차피 자본은 돈만 벌어주면 그가 어느 나라 사람인지 개의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편 게임 용역 개발 시장에서도 한국 게임 개발자들은 과거와 달리 해외 개발자나 외주 용역 회사와 경쟁을 해야 한다. 이미 국내 게임의 그래픽 외주 시장의 많은 부분을 중국의 외주 업체가 잠식하고 있다고 하는데(이쪽 일을 다년간 해 온 개발자들에게서 직접 확인한 사실이다), 앞으로 이런 경쟁이 더 심해지면 심해졌지 완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이유는 물론 앞에서 말한 그대로이다. 수요는 적은데 공급이 점점 많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소수 메이저 업체에 의한 국내 게임 퍼블리싱 시장의 과점화가 완성된 지금, 이들 업체가 정규직 개발자들을 점점 줄여나갈 것이며, 그로 인해 개발자들은 한편으로는 대기업에 착취당할 운명을 가진 소규모 개발사를 꾸려 나가거나, 아니면 비정규직 개발자가 되어 불안정한 상황에서 게임 개발을 하게 될 것이라는 이러한 예측은, 순전히 나의 개인 경험에 근거한 소설과 같은 시나리오지만, 국내 메이저 퍼블리셔들의 최근 동향을 면밀히 관찰해 보면 이러한 나의 시나리오가 완전히 허황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확실히 국내 게임업계는 몇 년 전과 매우 달라진 상황에 처해 있으며, 그 변화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입는 것은 우리 개발자들일 것이다.

 

최근에 국내에서 가장 큰 게임 회사에서 일하는 한 후배를 만나서 커피 한잔 한 일이 있다. 그는 국내 최고 히트 온라인 게임의 라이브팀에서 일하면서 게임을 업데이트하면서 지내고 있었는데, 큰 욕심 없이 현실에 만족하면서 일하고 있었다. 그는 앞으로도 몇 년 간은 지금처럼 일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듯했는데, 아마 국내의 많은 개발자가 그와 비슷한 생각으로 일하고 있을 것 같다. 우리가 과거에 일해 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알아 두어야 할 상식이 있다. 지금 온 나라가 비정규직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 이러한 ‘노동자의 비정규직화’의 물결이 결코 게임업계만 비껴나가지는 않을 것이라는 가장 단순한 상식이다.

 

과거에 나는 게임 개발자는 그저 게임만 잘 만들면 되는 줄 알았다. 실력이 있으면 어느 회사든 들어가서 존중받으며 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실력만 있으면 내가 원하는 게임을 만들고, 그것을 통해 인정을 받고, 돈도 벌고 하고 싶은 일도 마음껏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 겪어본 세상은 그렇지 않았다. 게임 개발자도 결국은 임금 노동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정규직 임금 노동자였던 우리 눈 앞에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다음 처지가 놓여 있음을 알게 되었다. 내가 예언자도 아니고, 미래학자도 아니므로 앞에서 내가 이야기한 소설 같은 시나리오대로 세상이 움직일 거라는 생각은 솔직히 하지 않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시나리오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게임 개발자로서 자신이 일하고 있는 환경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항상 주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 개발자는 게임 개발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 개발을 위한 인적 자원 정도로 살아갈 수는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항상 눈을 뜨고, 시야를 넓히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개발자들끼리 진정한 연대를 이루어야 한다. 연대하지 않으면, 한국 게임 개발자의 미래는 없다.

게임개발, 게임기획, 게임기획자, 게임개발자, 비정규직, 게임
# by 김웅남 | 2007/10/02 19:31 | 게임에세이 | 트랙백(3)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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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Edward's Enj.. at 2007/10/03 09:06

제목 : 게임 개발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의 대한 트랙백
게임 개발자와 비정규직 노동자위 내용을 뼈져리게 공감한게 벌써 1년이 다되어 가고 있다.벌써부터 몇몇 대형 업체에서는 인원을 마구 토해내고 있다.실제 회사 내부를 들여다보면 아주 가관이다.정규직이라 함부로 내보지는 못하고 할일 없는 개발자들이 상당수라는 것이다.뭐 정규직과 관계 없이 정리해고 하는 곳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데에 두가지 큰 이유가 있다.첫째, 게임개발 붐이 일어나면서 그동안 게임개발에 대한 동경을 ......more

Tracked from 칼리토가 머무르는 장소 at 2007/10/03 13:33

제목 : 게임 개발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http://gomsik.egloos.com/1507480 김웅남님의 이글루스에서 겟트. 트랙백이 안 되어서-_-);;대충 예전 AOG 시절에 이야기하지 않았던 상황들이 슬슬 맞물려 돌아가는 느낌을 받는 게 기분 탓이 아니길 바란다....more

Tracked from 觀鷄者의 망상 공간 at 2007/10/24 15:22

제목 : 게임 개발자의 미래는?
게임 개발자와 비정규직 노동자 최근 여러 가지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쎄게' 받고 있다. 그렇다보니 하지 않던 지각을 계속 하고 있고, 업무 집중도도 개판 오분전이 아닌 개판 그대로다. 이 스트레스를 건전하게 풀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지만, 몸 상태도 예전같지 않다. 결국 배설하는 기분으로 예전부터 하고 있던 생각을 정리한다. 어느 날 저녁, 사무실 동료들과 같이 저녁 식사를 하는데 통칭 노가다로 불리우는 일용직 건설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가......more

Commented by 짜로씨 at 2007/10/02 20:09
뭐 읽다보니 참...하는 탄식만 나오네요..대체 어디까지 가야 그칠런지요...;;
Commented by 觀鷄者 at 2007/10/02 20:41
저는 비정규직이 아니라 일용직 노동자 그러니까 노가다와 같은 레벨로 보고 있습니다. 머리 속으로만 하고 있던 생각을 정리해서 트랙백하도록 하겠습니다.
Commented by 세계의적 at 2007/10/02 21:56
밸리에서 찾아와 좋은 글 읽고 링크 해 갑니다.
말씀하신 외주 용역 전문 회사 라던가 비정규직 노동자 증가 같은 부분은 현재 일본 게임 업계의 모습과도 닮아 있는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네르후 at 2007/10/03 00:54
junhoo:

업계 선배의 엠에스엔으로 링크로 글을 보게 되었습니다.
등골이 오싹해지네요...

이때까지 봐 왔던 외주, 비정규직의 구조들이 조금씩 잠식해 들어오고 있는 상황을
떠올리니 조금은 무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많은걸 생각하게 해주시는 글이네요.

링크해 갑니다. ^^
Commented by 칼리토 at 2007/10/03 03:38
저 역시 게임관련 공부를 하는 학생입니다. 앞으로의 진로에 관해, 또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는 글이네요. 링크 신고합니다.
Commented by 칼리토 at 2007/10/03 14:40
그리고 생각해보면, 이미 용역 비슷한 것들은 등장하고 있죠.
(어디까지나 근거 부족인) 게임잡에서 구인하는 쪽을 보면
직접 회사가 모집하는 게 아닌 용역업체를 통해 인원을 모집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퍼블리셔의 과점 구조가 확실하게 형성되어 개발인력이 대거 방출된다고 하면,
이 때부터 용억업체는 퍼블리셔를 위한 인력 풀과 인력 공급의 역할을
분명하게 해 나갈 소지가 높겠죠.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지만 정도가 더 심해질듯 합니다)
아무튼, 뭐가 되었건 연대만이 살 길이긴 한데.
과연 이 쪽에 참여하는 개발자들이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합니다....
생존이 발목을 잡으면, 이상은 무너지게 되어 있으니 말이죠-_-)a
Commented by 김웅남 at 2007/10/04 10:01
위의 세계의적님 덧글을 읽어 보니 일본에서는 이런 작업 시스템이 정착되어 있는 모양이네요. 일본도 비정규직 숫자가 만만치 않다고 들었습니다. (다만 <88만원 세대>의 저자 말로는 우리보다는 임금 수준 등이 훨씬 낫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칼리토님의 말씀대로 저 이야기는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재의 이야기입니다. 미래에 일어날 시나리오인 것처럼 썼지만, 좀 민감한 이야기를 에둘러 말하고자 미래시제를 사용했을 뿐, 칼리토님 말씀대로 이미 시작된 이야기입니다.

개발자 연대와 관련해 이야기해 보자면, 기업들이 노동자의 힘을 약화시키는데 가장 효과적인 전술중 하나가 그들을 흩뜨려 놓는 것입니다. 즉 개별적으로 분산시켜 놓는 방법이죠. 그렇게 되면 게임 이론에서 이야기하는 '죄수의 딜레마' 같은 것이 생겨나게 되어 결국은 기업의 의도대로 되기 쉽습니다. 또한 지금 많은 기업에서 그렇게 하듯,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이해관계가 대립되게 하면 더더욱 노동자가 뭉치기는 어렵게 되지요. 게임이 아닌 다른 산업에서는 나름대로 노동자의 연대 경험이 많은 편인데도 지금 대단히 어려운 처지에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연대의 경험이 거의 없는 게임 개발자들의 경우, 혹시라도 위에서 말한 것과 비슷한 개발 환경에 처했을 때 과연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을 지 의문입니다. 아마 개발자들끼리는 힘들 것입니다. 연대의 경험이 많은 다른 노동자 단체의 도움이 필요할 지도 모르지요.

그리고 짜로시님, 觀鷄者님, 네르후님 반갑습니다. 방문 감사드립니다.
Commented at 2007/10/04 10:4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김웅남 at 2007/10/05 19:37
대마왕/ 오늘도 게임 뉴스를 보니까 NC소프트에서 전 WOW 개발자를 영입해서 신작 개발 중이라는 기사가 떴더군요. 해외 시장을 뚫으려는 목적과, 그에 걸맞는 인력 수급 및 활용 방식이라는 측면에서 국내 개발자들의 입지는 자꾸만 좁아지고 있네요.
Commented by 아큐라 at 2007/10/05 21:47
안녕하세요. 똘망소년님 ㅎㅎ

계륵같은 직원들에게는 방송사에서 외주 주는 형태 비슷하게 갈 수 있겠지요.
Commented by 김웅남 at 2007/10/08 10:39
앗 아큐라님, 오랫만입니다 ^^
방송사 외주 방식을 제가 잘 모르기는 하지만 말씀 들어보니 게임 업계가 아닌 다른 업계에는 사람들 부려먹는 방법이 이미 많이 개발되어 있겠군요...
Commented by 세피로스 at 2007/10/12 22:53
안녕하세요.
실제로 게임 업계에서 QA테스터 용역직으로 일해봤기에 내용이 많이 와 닿습니다. 심지어는 게임 잡지사의 리뷰 및 공략마저 개별 용역의 형태로 전환되고 있는 실정이고요. 최근엔 시장이 어떻게 변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세계적으로 나라나 산업구조를 가릴 것 없이 지금 이야기하신 용역 식의 시스템이 큰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정규직 자리를 차지할 것이고...

이대로 주저앉아서는 아무것도 안 되겠구나 싶어, 최근 신촌 모 대학으로 편입해서 학벌도 높이고 게임적인 지식 이외에도 영어와 일어를 엄청 해놓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게라도 보험 들지 않으면, 그나마 신입은 설 자리도 없는 것 같더군요.

보통 개발자분이 이렇게 글 잘 쓰시는거 보기 드문데, 명문을 읽을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이글루는 최근 방치해두고 있는 상태이지만 링크 추가 드리고 가요. 앞으로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Commented by 김웅남 at 2007/10/19 10:17
세피로스/ 제가 블로그 관리를 소홀히 했더니 덧글 다신 걸 이제 발견했습니다. 신촌 모 대학에 다니신다고 했는데, 저도 2년 전 서강대학교 창업 보육 센터에서 게임 회사를 시작해 본 적이 있어서(1년 반만에 말아먹었지만요 ㅜㅜ) 그쪽 동네에 정 같은게 있지요 ^^ 반갑습니다. 제가 블로그에 글 쓰는게 들쭉날쭉이긴 하지만 종종 들러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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